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맛의 역사에대해 알아보고, 최초의 요리사에대하여

 1. 맛의 방주

이탈리아 브라에 본부를 두고 150여 개국 회원 10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국제기구인 슬로푸드 국제본부의 프로젝트. 1996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글로벌화로 획일화된 음식이 생산ㆍ소비되고 있는 것을 경계하고자 유엔이 교류하는 세계적 운동으로, 전통 먹거리 종자를 보호하고 종 다양성을 지켜나가면서 그 지역의 전통음식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멸 위기에 처한 음식문화유산을 찾아 목록을 만들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해 지역 농업을 활성화하는 사업을 벌인다.

'맛의 방주' 선정 기준은 특징적인 맛을 가지고 있을 것, 특정 지역의 환경ㆍ사회ㆍ경제ㆍ역사와 연결돼 있을 것,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어야 할 것, 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될 것 등이다. 각 국가위원회에서 심사, 후보를 정해 슬로푸드 국제본부에 신청하면 국제본부 산하 생물종 다양성 재단에서 승인해 최종적으로 선정된다.

1997년 이탈리아에서 ‘맛의 방주 선언문’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2013년 11월) 총 83개국의 1318개 식품이 목록에 올라 있다. 우리나라 식품은 2013년 8월 처음 울릉도 칡소와 섬말나리, 진주 앉은뱅이 밀, 연산 오계, 제주 푸른콩장이 등재된 후, 9월에 등재된 장흥 돈차 청태전, 제주 흑우, 태안 자염 등 8종이 등재되어 있다.

2. 음식의 역사

프랑스 대혁명은 인류에게 자유와 평등만을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오늘날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인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도 프랑스 대혁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해고된 궁전과 귀족의 개인 요리사들이 먹고살기 위해 레스토랑을 만들고, 맛있는 요리들을 경쟁적으로 만든 덕이기 때문입니다 요리의 기원을 따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어쩌다 불에 구워진 고기를 먹어보니 생고기보다 먹기도 편하고, 풍미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프랑스 남부에서 음식을 축축한 잎에 싸서 익히는 방법을 알아냈고, 토기가 발명되면서 음식을 찌고 
삶고 끓여서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아주 오랜 세월 맛과는 동 떨어진 삶을
살아왔습니다 대부분의 기간은 배를 채우는데에 급급했죠 그래도 요리사는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3. 최초의 요리사

유럽 최초의 요리사 기록은 고대 아테네에서 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노예였습니다 귀족 집안의 음식을 담당한 이 노예들은 그래도 다른 노예들보단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로마 시대가 되면 이들 요리사가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전문 요리사협회도 만들어지고, 최초의 요리학교도 로마 때 처음 
세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일부를 제외하곤 유럽 전역에서 요리라고 할 만한 음식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수도원의 수도사들 사이에서 몇 가지 요리가 전해질 뿐 이런 상황은 중세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사실 중세 분위기도 맛있는 요리 발달을 억눌렀습니다. 먹을 것 자체가 절대 부족인 시대였습니다.
거기에 교회까지 나서 맛에 대한 욕구를 마치 인간의 성적인 욕구를 대하듯 죄악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음식 자체가 하느님이 주신 완변한 은총이기 때문에 여기에 맛을 더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 침범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할게 프랑스입니다. 프랑스 요리가 서구 음식에 진정한 맛을 가져온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14세기 후반 프랑스의 궁전 요리사였던 기욤 티렐 이 비앙 디에(고기 요리)라는 프랑스 최초의 요리책을 냈습니다
중세의 요리를 집대성한 이 책에 의하면 중세의 궁전 요리는 지금의 프랑스 요리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요리 연구가들에 의하면 오히려 중동의 음식에 더 가까웠다고 합니다 가장 풍요로운 왕실에서 조차 이 당시는 질보다 양이였습니다 아무래도 교회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에 맛보단 양으로 자신의 권력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음식을 큰상에 한꺼번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었습니다 부를 과시하기 위해 프랑스의 왕들은 이런 정찬을 하루에 6-7회씩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식가가 아니면 왕 노릇하기 힘들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지위와 권력을 드러내는 게 더 중요했던 이 프랑스 음식들은 당연히 맛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모든 고기들은 엄청나게 비싼 향신료를 떡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화려하게 보이기 위해 많은 요리들을 식용색소로 울긋불긋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오리나 학을 통으로 구어 갖가지 색을 칠한 다음 연회장 곳곳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다가 프랑스의 중세 요리에 큰 변혁이 오는계기가 생겼습니다.

4. 음식의 맛

1553년 그 유명한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앙리 2세와 결혼하기 위해 프랑스에 온 것입니다
카트린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서 음식을 만들던 유명한 요리사들을 함께 데리고 왔습니다
이들이 프랑스 궁중 요리사들에게 조리비법을 전수하면서 프랑스는 드디어 '음식의 맛'에 눈을 뜨게 됩니다
게다가 프랑스는 이탈리아보다 훨씬 다양한 식재료가 있는 나라라 요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상류층의 일일 뿐 대중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좀 더 세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중세가 지나고 르네상스 시대가 되었지만 파리에도 런던에도 음식점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상인들이나 영행자들이 묵는 숙소의 식당이 자기 집 외의 장소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이것조차 음식종류가 가정에서 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손님이 메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지금
우리가 아는 레스토랑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파리에 지금과 같은 음식점이 처음 들어선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입니다
1765년 불랑제 라는 사람이 루브르 박문관 근처에 양고기 스튜 집을 열었습니다 역사상 레스토랑이란 명칭이 붙은 첫 음식점입니다
이 시기에 즈음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50여개의 레스토랑이 파리에 문을 열었습니다

5. 요리사의 왕

한편 프랑스의 궁중 요리는 발전을 거듭하다가 미식가였던 루이14세와 루이 15세에 이르러 거의 완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기 프랑스 요리는 극적으로 변모해 이전의 향신료가 범벅된 맛에서 본연의 식재료 맛을 살리는 가볍고 건강을 중시하는 조리법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요리의 큰 주류를 이루는 '누벨 퀴진'의 원조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렇게 프랑스 요리가
완성되는 시점에 프랑스 대혁명이 터졌습니다 왕도죽고, 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몰락했습니다.
그 유탄을 맞은게 요리사들입니다 졸지에 궁전과 왕족, 귀족의 집에 고용된 요리사들이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대거 파리의 거리에서 포장을 치고 음식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돈이 모이면 
레스토랑을 차렸습니다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던 맛있는 요리가 드디어 대중들에게 한 발짝 다가서게 된 것입니다
50개 정도이던 파리의 레스토랑은 혁명 후 1814년까지 무려 3,000개로 늘어났습니다
맛있는 요리를 팔아 돈을 버는 '직업으로의 요리사'가 사실상 이때 탄생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기에 마침 등장한 인물이 마리 앙투안 카렘입니다 세계적으로 셰프로 유명해진 첫 번째 요리사입니다
그는 나플레옹의 요리사였으나 나중엔 영국과 러시아의 황실에서까지 모셔간 인물로 '요리사의 왕'이라 불렸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지금의 프랑스 요리를 만든 셰프입니다 프랑스 요리가 세계의 요리에 끼친 절대적인 영향을 생각했을 때 오늘날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이 분의 지분이 크다고 할 것입니다

6. 느낀 점 들

우리가 먹는 음식과 맛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데요 이처럼 당연시되는 우리의 생활에 역사적으로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던 시간이라 기록으로 남겨보았습니다 다양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 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직업으로 삼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프랑스의 시점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네요! 다음에는 의, 식 , 주에서 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